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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tgreggd 2024. 1. 31. 09:21


태어나서 다섯해를 산 페루, 그리고 아버지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파리로 귀환 후 해군 사관 후보생이 되어 남미, 지중해, 얼어붙은 북극해를 거침없이 휘젓고 다닌 폴 고갱. 다시 어머니의 사망 후 주식거래인으로 일하면서도 가슴 밑바닥에는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타오르던 그는 결국 미술계에 입문하게 되어 에드가 드가의 영향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주식거래인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면서 그동안 사모았던 인상파 화가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팔려 나가고,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던 그는 처가식구들에 의해 가족과도 헤어져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마치 고독이라는 가시밭길을 운명적으로 선택한 사람처럼 화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상처받은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성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존심강하고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인 그가 열대와 브르타뉴를 처음 접하고 얻은 영감에, 타히티에서의 작품활동과 생활은 행복에 젖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에서 영감과 때론 분노를 일으키고 사라지지만, 결국 경제난에 허덕이던 그는 마지막 남태평양 여행을 떠나면서 파리역의 리옹행 개찰구에서 결국 눈물을 보인다. 병고와 술과 절망에 찌든 고갱은, 마침내 그 어떤 객기도 허세도 음모도 퇴색시키지 못할 불후의 명작들을 뒤로 한 채 세상을 떠난다. 언제나 문명의 세계에서 탈출하고자 애썼던 그는 영원한 방랑자로 우리곁을 떠난 것이다. [인상깊은구절]"저는 용기도, 돈도 떨어졌습니다."그는1885년 5월 피사로에게 다시 편지를 보냈다. "다락방으로 올라가 목에다 밧줄을 매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날마다 엄습해 옵니다. 저의 발목을 잡는 것은 오직 그림뿐입니다." 이 충격의 발언은 고갱을 끝까지 나아가게 만들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시사한다. 그림은 그를 구원했던 성스러운 의무감이었다.
남태평양으로 출발하면서 고갱이 꿈꾸었던 것은 목가적인 은둔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영감(랭보가 말한 고대 향연의 비밀을 푸는 열쇠 ), 오래 전에 망각된 종교와 전통, 장대한 원시신화의 발견이었다. 지나치게 문명화되고 서양화된 타히티의 현실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고갱은 프랑스령 파이에테의 영사였던 자크 앙투안 뫼랑후기 반 세기 전에 낸 민속지 보고서 를 활용하여 을 펴냈다. 이 책은 가장 많이 알려진 자신의 그림 몇 점과 수채화 삽화를 곁들여 그가 직접 펜으로 쓴 필사본이다.
고갱은 보라보라 섬에 살았다는 폴리네시아의 신과 여신으로 이루어진 라에오의 종족의 이야기를 여기에 담았다.


1. 화가의 길
2. 브르타뉴와 열대를 처음 만나다
3. 인디언과 섬세한 남자
4. 이아 오라니 타히티
5. 몽파르나스의 열대
6. 마지막 정열의 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