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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조는 나와 동갑내기이다. 물론 일면식도 없지만 단순히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동지의식 같은 걸 가지게 된다. 참 희한하게도 학부 때의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이상하게도 사회에서 동갑내기를 만나는 건 생각처럼 흔하지 않다. 더욱이 여자 동기들. 다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같은 학번의, 혹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면 우선 반가운 마음이 앞서는 건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더군다나 그 친구가 나랑 썩 말이 잘 통하는 친구라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
나는 『기대어 앉은 오후』로 이신조를 기억한다. 뭔가 명료하게 뚜렷한 인상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신, 조라는 이름 석 자만은 분명하게 각인되었다. 『29세 라운지』나 『감각의 시절』, 『우선권은 밤에게』 등 신간이 나온때마다 유심히 챙겨본 것도여기에서 기인한 것일 게다. 이 책을 읽은 것도 순전히 이신조 라는 이름 석 자 때문이었다. 소설가 이신조의 행간의 추억
물론 내가 모든 책의 연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책의 연인이 되고 싶지도 않다. 더구나 연인이 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일이 아님은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랑, 행간의 추억은 짐짓 충만하고 압도적이고 또 치명적이다. 책이 고독한 자들만을 자신의 연인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은 제법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의 연인이 되어 주었던 그 책, 그 한 권의 책-그 단어가, 그 문장이, 그 페이지가, 그 책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 결국 내게 도착했는지를 생각하면 경이롭기만 하다. 그 단어가, 그 문장이, 그 페이지가, 그 책이 씌어지던 순간에 이미 이 순간마저 정해져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전율. 책이라는 우주를 이루는 어떤 섭리. 하여 나의 연인, 책. 그는 대체로 무섭고 슬프고 아름답다. 그런 그의 연인이 된다는 것. 견딜 수 없다는 느낌,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고, 오래도록 서성이거나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를 기꺼이 그리워하고 기다릴 수 있다. 깊고 진한 영혼을 가진 책의 연인이 될 수 있는 삶이 내게 주어졌다는 것에 언제까지나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친구의 미덕 중 하나는 친구의 모든 고민을 들어주는 것일 게다. 혹은 마구마구 자랑하고 싶지만 재수없다는 핀잔을 들을까봐 아무에게나 할 수 없는 자랑을 들어주는 것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게 종합된 것 중 하나가 아마 연애담 일텐데, 그래서 친구의정의 중 하나는 줄기차게 무한 재생되는 친구의 연애담을 싫증내지 않고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그때마다 늘 새롭게, 적당히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들어줄 수 있다면 좋은 친구인 셈이고,같이 울어주고, 같이 분노하고, 같이 웃어줄 수 있다면 최고의 베스트 프렌드라 할 수 있을 게다.
이신조는 이 책을 통해 책과의 연애담을 털어놓는다. 그녀의 연인이었던 책들, 오래도록 서성이거나 잠을 이룰 수 없게 했던, 그리워하고 기다릴 수 있게 해줬던 그 연인들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경청할 마음의 준비를 한 채 그녀의 연애담에 귀를 기울인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예의 바른 그녀는 연애 역시 매우 모범적이고 반듯하게 한다. 다혈질이라 제 분에 못 이겨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거친 말을 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사랑을 최대한 정중하고 아름답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그래서 밋밋할 수도 있지만, 맹물과 같은 사랑, 그런 사랑이 오래가는 사랑이다.
호불호를 명료하게 밝히고,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고집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그녀의 매력이자 장점으로 작용한다.
소곤소곤, 조용조용, 두런두런... 그녀는 최대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갖추며, 그를 소개한다.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을 보는 것, 타인에게 그이의 흉을 보기보다는 장점만을 이야기하는 그녀가 참 예뻐보인다.
"너같은 사람이랑 사랑에 빠진 그 남자, 누군지 정말 복받은 거다. 진정한 행복자인걸?" 나는 싱긋 웃는다.
물론 그녀와 나의 이성을 보는 안목이나 취향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싸움이나 반목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보는 안목이 확장되고, 인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나 편견을 교정할 기회가 된다. 그래서 이 동갑내기 친구가 참 고맙다.
아마 나는 이 책으로 인해 내가 부르주아 작가로만 감상했던 산도르 마라이를 다시 읽게 될 것이다. 어쩐지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던 배수아의 작품을 읽어 보게 될 수도 있겠다. 내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괜찮은 사람일테니 내가 갖고 있던 것이 선입견이나 편견일 수도 있는 게다.
"그 사람 정말 괜찮지? 그치? 그치?" 죽이 잘 맞아 손뼉을 치고 깔깔거릴 수 있는 만큼이나, 누군가에 대한 인식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는 게 이런 책읽기가 갖는 즐거움이자 유익함이 아닐까? 물론 알지 못했던 새로운 친구를 소개받는 즐거움까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덧붙임] 예스24에서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젊은 소설가 이신조의 2005년 9월부터 2007년 1월까지 주간한국 에 연재한 칼럼들을 모은 책. 그녀가 41권의 책을 읽고 쓴 단상을 담았다. 문학, 역사,철학 , 예술 분야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뿐 아니라 잊혀진 책들, 유명하지만 “충분히 읽히지 않은 책”이 다루어지고 있다.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 ,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의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등 동서양의 다양한 문학책 21권을 소개했다. 『책의 연인』은 작가의 기억에 맞물린 작품 이야기와 책을 둘러싼 사회적 이슈, 세상사는 이야기까지 풀어내었다.
젊은 소설가 이신조의 2005년 9월부터 2007년 1월까지 주간한국 에 연재한 칼럼들을 모은 책. 그녀가 41권의 책을 읽고 쓴 단상을 담았다. 문학, 역사,철학 , 예술 분야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뿐 아니라 잊혀진 책들, 유명하지만 충분히 읽히지 않은 책 이 다루어지고 있다.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 ,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의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등 동서양의 다양한 문학책 21권을 소개했다. 책의 연인 은 작가의 기억에 맞물린 작품 이야기와 책을 둘러싼 사회적 이슈, 세상사는 이야기까지 풀어내었다.
작가는 책과 함께 잠이 들었던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문득 곁에 누워 있던 책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책의 연인이 된다는 것은 고독한 일이지만 저자는 기꺼이 책을 그리워하고 기다릴 수 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다른 책과의 소통의 창구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정보 길라잡이로도 활용할 수 있다.
1
* 산도르 마라이, - 우리 삶의 진실한 내용은
* 크리스티나 페리로시, - 미미한 균열을 옹호함
* 로알드 달, - 산전수전 공중전
* 페터 회, - 당신이 눈과 얼음에 대해 뭔가 알고 싶다면
* 도리스 되리, - 그녀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미소
* 무라카미 하루키, - 깊고 무거운 하루키
* 미셸 우엘벡, - 사랑할 수 없다면 멸망하라
* 배수아, - 차갑게 빛나는 황폐함
* 파스칼 키냐르, - 은밀하게, 더욱 은밀하게
* 수키 킴, - 슬픈 모국어
* 조하형, -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에서 시작된다
* 조너선 샤프란 포어, - 삶과 사랑과 진실의 총체
* 존 버거, -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 밀란 쿤데라, - 테레사와 토마스와 사비나와 나
2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 최승자, - 지금 시가 없는 어디에서 그녀들은
* 기형도, -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최하림, - 풀보다 먼저 일어서는 시인
* 이성복, - 시인의 사유, 지구의 꿈
* 김혜순, - 기다려라, 스페인!
* 황인숙, - 그녀는 예뻤다
3
* 서경식, - 그림, 시대, 인간
* 캐테 콜비츠, - 씨앗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
* 수지 개블릭, - 신비의 발명, 부조리의 매혹
* 타샤 튜더, - 존재하며서 살아가기
* 이다, - 소녀는 울지 않는다
* 빈센트 반 고흐, - 활활 타오르는 남자
4
* 롤랑 바르트, - ‘운명의 연인’이 아닌 ‘연인이라는 운명’
* 메이 사튼, - 천상천하 유아독존
* 버트런드 러셀, - 지식과 지혜 사이
* 필립 샌드블롬, - 나는 너무나 아프다
* 서준식, - 오직 착하고 아름답기 위해서
* 야마다 쇼지, - 그녀의 무덤은 이 땅에 있다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 발전이라는 서글픈 오해
* 마이클 길모어, - 상처는 어떻게 유령이 되는가
* 장-자크 르세르클 외, - ‘현대소녀’ 탄생
* 김동춘, -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 가와이 하야오, 나카자와 신이지, - ‘옳다’라고 말하지 않는 종교
* 정수일, - 그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다
* 리영희, - ‘절대’는 없다
* 김형경, - 지금 여기, 나라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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